반도체 중심 저탄소 전환 부담··· 에너지 믹스 다변화 필요
실시간 전력 수급, 전력망 유연성 확보 등 종합 지원 과제

[국회=환경일보] 김인성 기자 =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탄소중립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에너지·산업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국회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특히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저탄소 전환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에너지 믹스 다변화, 전력망 유연성 확보, 실시간 수급 관제 체계 구축 등 종합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김소희 의원 주최로 열린 ‘지속가능한 AI시대를 위한 탄소중립과 산업정책 토론회’에서는 AI 시대의 전력 수요 증가와 탄소 규제 강화라는 이중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에너지 정책 방향이 집중 논의됐다. 이번 토론회는 생성형 AI 확산으로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안정적 전력 공급과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발제를 맡은 이창엽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지속가능기술연구소장은 기후변화 대응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이 1.5도를 초과할 경우 환경 문제를 넘어 막대한 경제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AI 확산에 따른 전력 사용 증가가 온실가스 배출 확대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으며, 반도체 산업은 이러한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분야라고 진단했다.
이 소장은 “반도체 산업은 전력 사용에 따른 간접 배출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구조”라며 “생산 확대와 함께 전력 수요가 지속 증가하는 만큼 탄소 규제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의 경우 전체 배출량에서 전력 사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공정 과정에서 사용되는 가스 역시 주요 배출 요인으로 지목됐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는 삼불화질소(NF3) 등 온난화 영향이 큰 가스가 사용되는데,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첨단 제품은 적층 구조로 인해 식각·세정 공정이 복잡해지면서 가스 사용량과 전력 소비가 동시에 증가하는 구조다. 여기에 TSV(실리콘관통전극) 등 추가 공정이 요구되면서 에너지 사용량은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이와 함께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처리 과정에서도 한계가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한 설비 운영 과정에서 추가 에너지가 필요하거나 미세먼지 발생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기술적·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설명이다.
이 소장은 이러한 상황에서 “에너지 믹스 다변화와 실시간 전력 수급 관제 제도 마련이 산업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정책적 지원이 병행될 경우 기업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발제를 맡은 송재령 국가녹색기술연구소 글로벌전략센터 선임연구원은 “AI 기반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은 피할 수 없는 글로벌 흐름”이라며 “이를 규제가 아닌 경쟁력 확보 전략으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AI 수요 변동성에 대응 가능한 전력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 연구원은 “신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원자력과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포함한 균형 잡힌 에너지 믹스와 유연한 전력망 확보가 핵심 과제”라며 “국내 에너지 기술의 해외 진출 확대를 위해 기후기술 공공외교 전략과 실행 로드맵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김소희 의원은 “AI 시대 전력 공급과 저탄소 전환은 반도체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라며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조화시킨 합리적 에너지 믹스를 고도화하고, 반도체 저탄소 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 등 제도적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입법·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윤혜선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좌장을 맡았으며, 박성훈 사회적가치연구원 기획실장, 박철우, 조재한 등이 참여했다.
토론에서는 ▷기업의 저탄소 공정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금융 확대 ▷탄소중립 투자에 대한 세제 인센티브 강화 ▷전력망 투자 및 유연성 확보 ▷글로벌 공급망 기준에 부합하는 무탄소 전력(CFE) 사용 확대 등이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특히 글로벌 기업들이 시간 단위까지 맞춘 무탄소 전력 사용을 요구하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력 시장 구조와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날 참석한 모든 전문가들은 기후 대응이 지연될수록 경제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탄소 규제 강화와 공급망 기준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수출 경쟁력 약화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결국 AI 시대의 에너지 문제는 단순한 전력 수급을 넘어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 구조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아우르는 현실적 에너지 믹스, 실시간 전력 관제 체계, 기업 부담을 완화할 정책금융과 세제 지원 등 다층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의 의견이 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