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적응목표·평가체계 논의··· 적응 성과 측정 주목
전환적 적응·자연기반해법·데이터 정책 연계 필요성 제기
위험 감소, 회복력 향상 중심 지자체 실행력 강화 과제 제시

[한국과학기술회관=환경일보] 박준영 기자 =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 온실가스 감축과 함께 이미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적응(Adaptation)’ 정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국제사회는 적응 역량 향상과 회복력 강화, 취약성 감소를 위한 글로벌 적응목표(GGA) 구체화에 나서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적응정책의 평가체계 구축과 실행력 강화를 위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국립생태원, (재)기후변화센터, (사)한국기후변화학회, 환경일보가 공동 주최·주관한 ‘2026 기후위기 적응 컨퍼런스’가 10일 한국과학기술회관 중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이날 컨퍼런스는 ‘기후위기 적응의 새로운 패러다임: 정책·과학·실행의 통합전략’을 주제로 글로벌 적응 평가체계와 국내 정책 대응 전략을 공유하고 향후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창석 국립생태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기후위기가 더 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닌 현재의 현실이라고 밝히며, 생태계 회복력 증진과 자연기반해법(NbS)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기후위기 적응은 단순한 재난 대응을 넘어 자연과 인간이 함께 회복력을 높여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최재철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은 환영사에서 국제사회의 기후정책 논의가 감축 중심에서 적응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파리협정 제8조에 명시된 손실과 피해(Loss & Damage) 논의와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기후변화 관련 권고적 의견 등을 언급하며 “향후 적응 의제가 글로벌 기후과제의 전면에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미국 등 일부 국가들의 기후정책 변화 속에서도 적응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정책과 현장, 국내외 이해관계자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송영일 한국기후변화학회 회장은 축사를 통해 그동안 감축 중심으로 논의되던 기후정책이 이제는 적응 역량과 회복력 강화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하며, 학계 역시 적응정책의 과학적 기반 마련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기후적응, 이제는 성과를 측정하는 시대
첫 번째 세션에서는 글로벌 및 국가 단위 기후적응 평가체계와 지표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신지영 한국환경연구원 국가기후위기적응센터 기후적응정책실장은 적응정책의 핵심은 계획 수립 자체가 아니라 위험 평가와 계획, 이행, 점검이 반복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성공적인 적응은 문제를 파악하고 계획을 수립한 뒤 실제로 실행하고 평가하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라며 적응정책이 단순 사업이 아닌 장기적인 관리 체계라고 강조했다.

신 실장은 우리나라가 2008년 국가 적응 종합계획 수립 이후 4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대책에 이르기까지 약 16년 동안 제도적 기반을 구축해 왔다고 평가했다. 다만 적응은 지역별 특성이 강하고 범위가 넓으며 이해관계자가 다양해 성과 측정이 쉽지 않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적응계획을 만들고 이행하는 단계였다면 이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적응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이를 측정해야 하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이어 파리협정의 글로벌 적응목표(GGA)와 UAE 글로벌 적응 프레임워크를 소개하며 적응 역량 향상, 회복력 강화, 취약성 감소라는 목표를 보다 구체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마련된 59개 ‘벨렝(Belen) 적응지표’를 소개하며 물, 식량, 농업, 보건, 생태계, 인프라, 문화유산 등 7개 분야에서 적응 성과를 측정하는 체계가 구축되고 있다고 밝혔다.

오스왈도 페레즈 녹색기후기금(GCF) 관계자는 국제기후재원 관점에서 적응사업의 성과 측정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적응사업이 단순한 사업 추진 실적을 넘어 실제 기후위험 감소와 회복력 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GCF 역시 적응사업의 효과를 보다 체계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개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국제사회가 적응재원 확대와 함께 성과 측정 체계를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성룡 국립생태원 생태지표연구팀장은 자연기반해법(NbS)을 활용한 적응 평가체계를 소개했다. 그는 자연기반해법이 생태계 보전과 기후위기 대응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라고 설명하며, 최근 국제사회에서도 관련 평가체계 구축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강 팀장은 도시자연지수와 한국형 자연기반해법 평가체계 구축 연구를 소개하며, 지표는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하며 정책에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보호지역 연결성 지수, 도시 녹지 확대, 물 안보, 생물다양성 등 다양한 지표를 통해 적응 성과를 평가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표는 정책과 재원, 실행을 연결하는 공통 언어이며 측정은 곧 평가와 환류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예방적 대응 넘어 전환적 적응으로
두 번째 세션에서는 한국의 기후적응 정책과 향후 대응 전략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박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적응정책이 약 15년 동안 꾸준히 발전해 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1차 대책은 기반 구축, 2차 대책은 과학화, 3차 대책은 적응 주류화, 3.5차 대책은 실행력 강화, 4차 대책은 회복력 강화라는 흐름으로 발전해 왔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현재의 적응정책이 폭염, 홍수, 산불 등 사건 중심의 예방적 적응에 집중돼 있다고 진단했다. 하수도 설계기준 강화, 예보체계 고도화, 폭염 대응시설 확충 등은 분명 필요한 정책이지만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변화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는 전환적 적응(Transformational Adaptation)이 필요하다”며 해수면 상승과 인구감소, 공간구조 변화 등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국토관리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기후위험이 높은 지역의 개발 방향을 재검토하고, 위험지도와 적응 플랫폼을 활용해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기후적응은 단순히 인프라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장은혜 한국법제연구원 기후변화법제팀장은 글로벌 적응목표와 국내 정책의 정합성 확보 방안을 발표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적응정책이 부처별 사업을 나열하는 방식에 가까웠다고 평가하며, 앞으로는 위험 기반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은혜 팀장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떤 위험을 줄일 것인가, 누구의 취약성을 줄일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적응 성과를 사업 건수나 예산 규모가 아니라 취약성 감소와 회복력 향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향후 적응특별법 논의 과정에서 계획과 평가, 환류 체계를 연결하는 법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마지막 발표자인 손민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은 데이터 기반 지자체 적응정책 수립 방안을 소개했다. 그는 IPCC 역시 지역 단위 기후위험 평가와 환류 체계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국가 차원을 넘어 지자체 단위의 데이터 기반 정책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 연구위원은 지자체 수준에서 활용 가능한 90m급 고해상도 기후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기온·강수·풍속 등 다양한 정보를 보다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건물 단위 탄소배출 분석과 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통해 지역별 미래 위험을 시각화하고 정책 효과를 평가하는 시스템도 개발 중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AI 기반 분석기법을 활용해 지자체 계획사업과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자동 연계하고, 정책이 탄소중립과 기후적응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가 생산한 데이터가 실제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개방과 공유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터·평가체계 연계가 적응정책 실효성 좌우

종합토론에서는 적응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데이터 활용과 성과평가 체계 구축 필요성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토론자들은 국가 차원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기후·환경 데이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지자체 정책 수립 과정에서는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후위험 평가 결과와 적응대책 수립, 예산 편성, 사업 평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또한 글로벌 적응목표(GGA)와 벨렝 적응지표 논의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역시 적응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평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참석자들은 적응정책이 단순한 계획 수립을 넘어 위험 감소와 회복력 향상이라는 결과 중심으로 전환돼야 하며, 이를 위해 국가와 지자체, 연구기관 간 데이터 공유와 협력체계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익수 환경일보 대표는 토론을 마무리하며 “기후위기 적응은 더 이상 환경 분야만의 과제가 아니라 국토, 산업, 재난, 복지 등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국가적 과제”라며 “오늘 논의된 평가체계와 데이터 기반 정책, 전환적 적응 전략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